온라인 커뮤니티에 한창 이런 종류의 사진이 공유됐었어요.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주민센터나 병원에서 ‘내가 누구다’ ‘나를 모르느냐’ 하지 말고 신분증을 제시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안내판 말이죠. 얼마나 많은 문의가 있었기에 이런 안내판까지 만들어둬야 했던 것일까요?
그 노고를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동시에 나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도 살짝 이해가 됐습니다. 편견이 있음을 전제하고 말하자면, ‘나를 왜 모르느냐’고 말하는 분들의 대부분은 연세가 좀 있는 남자 어르신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동안 사회를 위해 알게 모르게 희생해 온 나를 알아봐야 한단 생각이 행동의 기반에 깔려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인정 욕구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느 분야에서고 경력과 역량이 쌓일수록 인정 욕구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아닐까요? 특히 일과 나와의 동일시가 클수록 또 일을 통해서 얻는 만족감이 클수록 인정 욕구도 커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회적경제, 사회연대경제, 소셜섹터.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여튼 이 영역에 있는 우리에게도 인정 욕구가 분명 있죠. 사업체이지만, 사회적 가치를 중심에 둔 활동은 때론 나를 제쳐두고 우리를 중심에 둡니다. 공적인 삶이 중심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다 보니 더 일을 통한 인정을 바라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사적인 나의 존재를 뒤로 숨길수록 나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은 일 하나로 좁혀집니다. 그 인정을 좇다 보면 어느새 나의 한계선을 넘어서게 되고요. 번아웃은 대개 그 지점에서 찾아옵니다.
이때 강조되는 것이 희생과 순교의 문화(Culture of Martyrdom)인데요. 대중과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만이 선한 일이라는 고정관념에 갇혀 한계를 넘어서는 활동을 하게 되는 과열 상태를 유지하는 겁니다.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동료에게 “활동가라면 당연히 겪는 일이니 그냥 참고 견뎌”라고 대응하고요. 그러다 보니 자기 돌봄을 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없는 것은 물론 개인적인 어려움도 동료나 조직에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침묵하게 됩니다. 그래서 논문은 건강하고 중심이 잡힌 공동체 돌봄의 문화(Culture of Community Care)를 만들어야 한다고 정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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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번아웃의 과정. 위 이미지는 노트북LM을 통해 만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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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렇다면 영웅적 개인에게 기대지 않고 여럿이 함께 짊어지는 구조는 어떨까요? 현대 협동조합의 원형으로 이야기되는 영국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의 리더들은 신기해요. 열악한 근무조건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부족한 자원이지만 함께 모은다면 생필품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1844년 영국 북부 로치데일의 방직 노동자를 비롯한 28명의 장인이 함께 협동조합을 설립합니다.
선구자 중 제가 알고 있는 이름은 없어요.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 그 이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지만 말이죠. 개인의 이름은 잊혔지만, 우리의 이름은 살아남았습니다.
선구자들 사이에선 인정 욕구가 없었을까요? 그들의 세세한 사정까진 알 수 없지만, 협동조합을 만들기 전 단계부터 함께 모여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확인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겪으며 기회를 탐색하고 실제 일을 만들어낸 경험 속에서 상호 유대감을 두텁게 쌓았겠죠. 그런 부분들이 과한 인정 욕구를 완화하지 않았으려나요?
협동조합은 어느 뛰어난 개인의 능력에 기대어 가는 게 아니라 서로서로 보완하며 에너지를 결합해가는 팀 기업가정신(team entrepreneurship) 위에 움직입니다. 한 사람의 에고가 아니라 팀이 일을 만들고 굴리는 거죠. 그리고 이 팀은 내부의 정서적 지지와 위험 분산에 바탕해 사회적 가치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게 협동조합의 매력이겠지요.
하지만 이 협동조합이 마냥 성공하는 게 아니라서 그게 문제일까요? 그래서 살펴봅니다! 협동조합은 왜 실패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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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에 촬영된, 생존한 로치데일 개척자 13명의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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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살펴본 논문은, 아니 에세이는 On the Causes of Co-operative Failure(2026)입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본사를 둔 협동조합 출판사인 Intercoop에서 낸 협동조합 문화총서 시리즈에 담긴 에세이고요.
협동조합 비즈니스 모델은 안정적이고 회복력 있는 것으로 언급됩니다. 그런데 협동조합 역시 어려운 시장 상황에 영향을 받습니다. 문을 닫는 협동조합도 합병되는 협동조합도 왕왕 있죠. 저자는 협동조합의 실패가 하나의 원인이나 선형적인 설명으로는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본 조건으로 설정합니다. 협동조합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 동시에 민주적 결사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기에 실패도 나쁜 경영 실적, 고립된 제도적 위기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협동조합은 실패라는 시행착오를 거쳐 발전했다는 점을 강조하죠. 실패가 끝이 아니라 검토하고 학습하고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이 글에 깔려 있어요.
협동조합은 왜 실패하는 것일까요? 저자가 인용하는 Couchman & Fulton(2016)은 대규모 협동조합이 무너진 사례를 통해 실패한 원인을 정리합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에서 근본 원인으로 거슬러 내려가며 짚는데요. 가장 윗단에는 협동조합이 겪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인수, 합병, 구조조정에 손을 뻗는 행동이 나타납니다. 여기엔 리더십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위기에 몰린 조직일수록 리더가 자기 판단을 동료나 조합원보다 우위에 두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사회의 감독은 느슨해집니다. 더 깊은 곳에는 협동조합의 가치를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사람을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앉히는 문제가 있죠. 이 모든 상황의 뿌리에는 협동을 해결책이 아니라 장애물로 여기는 배경이 존재합니다. 협동조합 자체를 강점이 아니라 한계로 느끼기 시작할 때 실패의 징후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저자는 협동조합의 실패를 꼭 파산에 한정해서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법적으로 협동조합인데 민주적인 운영이 더는 이뤄지지 않는 제도적 공동화도 실패의 한 모습입니다. 형식만 협동조합인 거죠. 이름만 남은 상태랄까요?
저자는 실패 요인을 나열하는 것에만 멈추진 않아요. 약간의 반전이라고 한다면, 협동조합이 일반기업보다 잘 살아남는다는 자료를 함께 언급합니다. 영국에서는 창업 후 생존 5년을 넘긴 협동조합이 약 80%, 일반기업은 44%거든요. 저자는 협동조합이 약점을 안고도 어떻게 더 오래 버티는지를 다시 묻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르헨티나의 사례를 통해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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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O는 회생 절차를 밟아 살아남아 지금도 조합원을 위한 주택을 짓고 지역사회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905년 설립돼 아르헨티나 등록 1호 협동조합(INAES 1호)인 EHO는 제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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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중 하나가 식품, 주택을 아우르는 복합 협동조합인 El Hogar Obrero(EHO) 입니다. 내부의 문제 (지나치게 중앙집중화된 리더십, 이견 수용 부족, 단기 예금 동원에 의존한 재무전략, 이사회로의 정보 흐름 취약)와 외부의 충격 (1989년말 예금을 국채로 강제 전환한 보넥스 플랜Plan Bonex)이 결합한 상황에서 협동조합은 국가에 묶인 자금을 확보하기 전에 조합원의 예금을 상환하기로 합니다. 조합원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점에서 신뢰를 지킨 것이지만, 결국 고금리와 인건비 문제 등이 겹치면서 지급불능에 빠져 회생 절차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저자는 질문을 던집니다. 조합원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최선이었을까요? 만기 조건 등을 재협상하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는 거죠.
흥미로운 건 정작 협동조합은 이 시기를 다르게 기억한다는 점이에요. EHO 홈페이지의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모든 채무를 명예롭게 이행하고 아르헨티나 도산법을 지켜 끝내 파산을 면했다고 서술합니다. 채권자의 약 80%가 회생 절차 첫 단계에서 채권을 100% 돌려받았고, 소액 예금자에겐 현금으로 갚았다고요. 같은 결정을 두고 누군가는 아쉬워하고, 당사자는 신뢰를 끝까지 지킨 자부심으로 기억합니다.
한편, 자산을 매각하고 부채를 늘리지 않았던 협동조합, 위기 상황을 조합원에게 투명하게 설명하고 함께 버텨낸 협동조합은 고비를 넘깁니다. 저자는 사례들로부터 신중한 재무 판단과 더불어 조합원에게 협동조합이 놓인 상황을 투명하게 알리고 협상하는 것이 필요하단 교훈을 찾습니다. 어려움을 조합원과 함께 마주하고 그 과정에서 지켜낸 신뢰가 협동조합을 살린다는 거죠.
결국, 협동조합은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우는가에 따라 정의될 수 있을 겁니다. 협동조합의 지속은 내부요인(거버넌스, 경영, 정체성)과 외부 제약(경제, 제도, 사회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실패의 원인이 아니라, 어떻게 협력하고 적응하며 영향력을 키워갈 것인가로 옮겨가야겠죠.
샤를 지드로 에세이의 시작과 끝이 정리되는데요. 마지막 문장이 주는 울림이 큽니다.
“사라져 간 협동조합들조차 헛되이 죽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통해 협동조합의 대의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 […] 그러므로 […] 사라진 협동조합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잊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인정을, 나아가 우리의 헌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Even the co-operative societies that perished did not die in vain. They served the co-operative cause effectively through the lessons they left us […]. Therefore […] do not forget to salute the co-operatives that disappeared: they are entitled to our recognition and even to our ho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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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9번째 뉴스레터를 보내고 난 뒤 한 분이 의견을 보내주셨어요. 일하고 계신 조직이 겪은 상황을 공유해주시면서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나눠주셨어요. 글을 읽으며 일과 조직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안전하게 나누며, 그 안에서 구성원 모두 발전해가는 조직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했습니다. 냉소하지 않고, 너무 뜨겁진 않고 미지근해도 어찌 됐든 애정을 갖고 조직을 바라보고 나와 동료의 성장을 만들어갈 수 있는 그런 조직의 모습이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어떤 이상향을 설정하고 있지도 않고요(그게 문제일까요?). 사람 중심 조직을 지향하는 협동조합도 완벽하진 않겠죠.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가니 완벽함을 전제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을지도요. 각자의 모난 부분을 이리저리 맞춰갈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게 필요하겠죠. 정말 공동체 돌봄의 문화라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너무 많은 이야기를 두서없이 펼쳐놓았네요. 과도한 자아에 대한 질문, 소진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협동조합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한 곳에 섞어찌개마냥 끓여놓았습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정리했는데요, 읽는 분들께서도 편하게(?) 지그재그로 읽어주셨길요. 때론 잘 정리된 매끄러운 글보다는 툭툭 걸리고 ‘이게 뭐야?’ 싶은 생각이 드는 글이 더 오래 남더라고요(라고 자기합리화를 해봅니다😓). 지치기 쉬운 여름입니다. 몸도 마음도 다독이는 여유 챙기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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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논문
📌문의 diveintocoo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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