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고 싶었던 경주 감포 바다입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듯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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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사이 대구와 경주를 하루씩 다녀왔어요. 이동 시간을 포함하면 하루를 온전히 지역에 머문 게 아니니 찍먹(...)하고 왔다고 할 수 있어요. 짧은 시간 머물면서 지역에서 다양한 사업과 활동을 펼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과물을 보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제 일이었지만, 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켜켜이 쌓아온 시간이 만든 이야기는 사실 일일이 들춰내지 못한 셈입니다. 먼저 자리를 잡은 사회연대경제조직이 이제 시작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기금을 만들어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주민들은 우리 동네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시간을 내어주고요. 그렇게 축적된 관계와 신뢰의 힘이 결과를 만들어냈음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요즘은, 어느 하나를 골똘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에 바탕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갖는 의미가 전처럼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것 같아요. 많은 것이 쉽고 빠르게 만들어지고 또 금방 바뀌다 보니, 일할 때도 그런 태도가 은연중에 더 가치 있다고 여겨집니다. 뚝딱 만들어내는 것 말이죠. 물론 그것도 좋지만, 진중하게 붙잡고 끈덕지게 늘어져 결국 만들어내는 끈기와 의지가 더 귀한 요즘이란 생각도 듭니다.
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래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지 못한다는 말이 맞거든요.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제가 요즘 그렇거든요. 업무에서 한 사람이 제 몫을 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데 점점 기다림이 힘들어집니다.
내가 성장하기 위해 일할 때 시간을 들이는 것에 점점 인색해지고, 타인의 성장을 기다릴 인내심도 없어집니다. 양쪽 다 이해의 폭이 좁아져요. 그렇게 제 성장가능성도, 이해하는 능력도 주저주저한 상황입니다. 이래저래 좁은 시야에 갇히는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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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커리어의 첫 시작은 협동조합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였을 거예요. 거기에 작은 점을 찍고 이어 또 작은 점을 찍고 선을 연결하다 지금의 일을 하게 됐죠.
회사에 다니면 일반적으로 직장인이라고 하는데 저는 저 자신을 직장인으로 부르는 게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비영리섹터에선 활동가란 지칭을 종종 쓰잖아요. 그 단어를 흘려들으면 급여를 받지 않고 일하는 자원봉사자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활동’이란 좀 더 자발성과 적극성에 담보한 것? ‘일’과는 층위가 다른 그 무엇으로 그려진다고나 할까요? ‘일’이라는 게 금전적 대가를 받은 때에만 해당하는 ‘업무’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이런 고민에 어느 정도 답을 찾았던 것이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란 책을 읽으면서였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사람의 삶을 생동하는 삶 (vita activa)과 사유하는 삶 (vita contemplativa)으로 나누고, 이 중 생동하는 삶을 이루는 세 가지 활동을 제시합니다.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가 그것인데요. 생존을 위한 ‘노동’, 세상에 유용한 사물을 생산하기 위한 ‘작업’, 그리고 사물이나 도구를 매개로 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서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로 구분합니다.
제가 ‘직장인’이란 단어가 걸렸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아요. ‘일’을 돈을 받는 업무로만 좁게 둘 순 없다는 생각이 있으니까요. 아렌트는 노동과 작업은 사적인 것으로, 행위는 공적인 것으로 두고 행위의 가치를 높게 봤습니다. 근대로 오면서 작업과 행위마저 노동에 흡수됐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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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은 인테리어용으로도 집에 한 권 챙겨두기 좋습니다.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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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사회는 분명 발전하고 있고, 그 발전은 우리에게 이전과 다른 많은 가치와 혜택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사람의 일이라는 것도 점점 먹고 살기 위한 노동만이 아니라 도덕적, 사회적, 미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도 일하고, 명성을 얻기 위해서도 일하고, 공동체에 긍정적 영향력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일까요? 여튼 사람의 일을 노동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다는 것은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에서 가치를 찾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보건의료나 국제개발, 교육, 자선 분야 등에서의 활동은 사회적 가치와 명확하게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상적인 업무와 사회적 가치의 연결성이 비교적 잘 드러난다고 할까요? 사회연대경제 조직에서 일한다는 것은 어떨까요? 분야나 업무의 성격에 따라 가치와의 연결성이 직접적인 경우와 간접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 모두 존재합니다. 개인의 가치관, 기대 정도, 상황에 따라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충분하고 누군가에게는 충분하지 않죠.
예를 들어, 공정무역을 통한 유통이 주된 사업인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는 어떤 이에게 자신의 기업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활동 자체가 매우 의미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정책이나 교육과정 개발 등을 통해 전체적인 사회 시스템을 갖추는 게 더 큰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가치가 있다거나 타당하다고 할 수 없죠. 각자의 기준이 다른 것이니까요.
그래서 요즘엔 사회적 가치라는 게 외부의 인정보다는 내부의 확신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나의 일이/노동이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지, 그 결과를 만드는 과정에서 감수할 수 있는 타협점은 무엇인지 그런 고민이 더 필요한 게 아닐까 싶거든요.
근데 이렇게 적고 보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요. 가치가 개인의 확신에서 비롯된다는 말을, 그것만으로 버티라고 하면 곤란하거든요. 확신은 개인의 몫일 수 있어도 그것이 소진되지 않게 하는 건 조직의 몫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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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한 달, 뉴스레터 작업을 꼬박 쉬었어요. 솔직히 고백하면 논문을 안 읽었습니다.😂 논문을 읽을 시간적 여유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어떤 문제의식도 안에서 싹트지 않은 다소 평온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의 마음이었거든요.
연차가 도합 50년은 되실 네 분의 이야길 들으며 몇 가지 꼭지로 구분해보고 짧게 정리했어요. 채용부터 성과평가, 보상, 조직의 지속가능성 등 큰 이야기들이 나오더라고요. 관계와 신뢰가 일할 때 힘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뷰를 통해 그 관계가 이제 막 들어온 사람에겐 진입 장벽이 된단 이야기를 들었어요. 또 확신을 갖고 일을 시작했더라도 일과 가치의 연결을 개인에게만 맡기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그때마다 제 생각을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또 비슷한 부분도 있고 그렇습니다. 사회연대경제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고민하셨던 부분들일 테고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 같고 또 조직 차원에서 아니면 개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사례를 함께 공유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댓글을 자유롭게 달 수 있는 링크입니다. 사회연대경제 조직의 조직문화나 사람, 일 등등에 대해 공유하고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을 수 있죠. 하지만 대안이 없다고 이야기조차 하면 안 되는 건 아니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윗세대(...)를 마냥 비판할 수 없는 입장이구나 싶어요. 문제가 되는 상황을 방관하고 넘기거나 좋은 게 좋은 거란 생각에 흐린 눈을 했다거나 그런 시간이 쌓여서 이 섹터에 부정적인 영향을 만드는 데 알게 모르게 일조했다면 그건 이제 제 문제가 되는 거니까요. 할 수만 있다면 있는 열정 없는 열정 끌어다 좋지 않은 문화는 바꾸고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싶어요.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일에 대한 생각과 고민은 누구나 갖고 있고 또 누구나 한 마디 얹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어렵거든요. 조직이란 울타리에서 일하는 누구나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좀 더 자유롭게, 안전하게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스몰토크이거나 빅토크이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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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았던 날 찍어둔 서울 시내입니다. 가끔은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크게 숨 한 번 돌려야 하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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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에 뉴스레터를 보내긴 처음인 것 같아요.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9월도 훌쩍 첫 주가 지났습니다. 벌써 2주차라니! 선선해진 가을 바람에 지난 여름의 무더위는 이미 기억 저편으로 밀려났습니다.
하루치의 일과 고민은 무겁기만 한데, 한 주를 보내고 또 한 달을 보내고 나면 매일매일의 일이 막상 그만큼 고되진 않은 것 같아요. 그렇게 덜어내기에 한걸음 내딛고 매번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작고 단단한 밤톨처럼 여물어가는 또 수확하는 가을이시길 손 모아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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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논문
📌문의 diveintocoo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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