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 어렵지 한두 번 분위기에 익숙해지면 금세 적응하는 것이 또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대체로 이미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서 시작해요.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행동하는 것에 주저할 때가 많죠. 저는 요즘 들어 그런 경향이 더 커지더라고요.
예를 들면, 도서관에서 읽을 책을 찾는 것도 미리 누군가의 추천도서를 찾고 그 책을 검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우연처럼 책을 만날 기회를 원천 차단한다고나 할까요? 식당을 갈 때도 맛집 리스트를 체크하고 믿을만한 사람이 추천했는지 살펴봅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새로운 경험을 하기는 어려워요. 비슷한 바운더리 안에서 촘촘히 움직이는 기분이 들어요.
원래 보려던 책이 아닌데 우연처럼 손에 걸린 <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이야길 잠깐 하려고요. 책의 저자인
엘렌 식수는 알제리 출신 유대인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영문학자이자 소설가, 극작가로 ‘프랑스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학자입니다. 그가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캠퍼스의 비판이론연구소에서 진행한 글쓰기 강의를 엮은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알려진 것이자 알려지지 않은 것, 제일 덜 알려진 것이자 제일 잘 알려진 그것, 이것이 글을 쓸 때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일 잘 알려진 알려지지 않은 것을 향해, 앎과 알지 못함이 닿는 곳,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고자 할 곳으로 갑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를, 보이지 않는 것을 마주보기를, 들리지 않는 것을 듣기를,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싶어 할 곳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생각입니다. 생각이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건 애쓸 가치가 없는 일입니다. 그리기는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리려 애쓰는 일이고, 글쓰기는 쓰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을 쓰는 일입니다. 글쓰기는 앎 이전의 앎이고 눈이 멀어 말로는 알지 못함입니다. 그것은 눈멂과 빛이 만나는 지점에서 일어납니다.” 엘렌 식수,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본문 73쪽
이게 대체 무슨 말장난 같은 글이야 싶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 맞는 말이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어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들여다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또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 것. 그래서 읽고 쓰고 말하는 탐색의 과정이란 언제나 모호하고 불투명합니다. 글쓰기만이 아니죠.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려고 애쓰는 것이 생각이기에,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우리 삶이 아닐까 싶어요.
엘렌 식수의 글을 읽다 보니, 지난 2002년 2월,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미 국방장관이 뉴스 브리핑에서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정보의 불확실성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 생각나더라고요.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보고들은 항상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알려진 사실들(known knowns)’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들이죠. 그리고 ‘알려진 미지의 것들(known unknowns)’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들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것들(unknown unknowns)’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들입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역사를 돌아보면, 가장 어려운 문제는 대개 마지막 범주(우리가 모르는 줄도 몰랐던 것들)에서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Reports that say that something hasn't happened are always interesting to me, because as we know, there are known knowns; there are things we know we know. We also know there are known unknowns; that is to say we know there are some things we do not know. But there are also unknown unknowns—the ones we don't know we don't know. And if one looks throughout the history of our country and other free countries, it is the latter category that tends to be the difficult ones.”
Known knowns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들, Known unknowns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들, Unknown unknowns 내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영역들. 생각하기/글쓰기는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영역들의 언저리를 배회하면서 뭐라도 알아채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사실 귀찮은 일이잖아요.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을 무슨 수로 알아낼 수 있겠어요. 꼭 알아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비어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