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뉴스레터를 보낸 지 두 달여가 훌쩍 지났습니다. 한창 설렘 안고 시작한 2025년도 절반이 넘어가는 시점이네요. 매년 사상 최고 기온을 갱신한다는 소식도 하루가 다르게 밥상물가가 올라간다는 소식도 매해 반복되는 것 같아 무던해집니다. 변화에 무뎌진다는 것이 마냥 좋은 일은 아닌데 말이죠.
개인적으로 또 일터에서 준비한 일이 몇 번 엎어지고 나니 마음이 휑하더라고요. 다시 출발점에 서서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막막하기만 하고요. 그러다 넷플릭스에서 ‘ 승부’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몇 년 전 개봉했어야 할 영화였는데 주연 배우의 불미스러운 일로 개봉이 늦춰지고, OTT 서비스에 빠르게 공개가 된 안타까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다 보니 대국 장면이나 바둑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무엇보다 제게 인상 깊게 남은 부분은 ‘복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대국이 끝나고 돌아와 내용을 검토하기 위해 두었던 순서대로 다시 바둑을 두는 장면 말이죠. 그게 승리한 대국이었거나 패배한 대국이었거나 상관없이 이미 끝난 승부를 바둑판 위에 다시 한 수씩 놓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을 시작할 때에야 기대와 설렘을 안고 진행하는데, 끝으로 갈수록 적당히 마무리하자는 마음이 듭니다. 결과가 나온 뒤엔 그것이 잘 됐거나 못 됐거나 여튼 끝이 났으니 다시 꺼내보고 싶지 않은 거죠. 그래도 이번 기회에 마음을 다잡고 엎어진 일을 다시 꺼내놓고 왜 기대하지 못한 결과를 얻었는지 복기하려 하는데, 생각만 해도 답답하네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사용자의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며 제품·서비스를 개선하는 애자일 모델을 스타트업은 물론 많은 기업에서 조직문화에 반영했었죠. 애자일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수평적이고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한 조직문화의 구축, 부서 간 칸막이를 허무는 것과 동시에 제대로 된 복기가 요구됩니다. 여기서 복기라는 것이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책임을 추궁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돼선 안 됩니다.
사회적경제 영역 전반적으로 복기는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을까요? 그동안의 변화 상황과 맞물려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그 과정에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인지 또 어떤 식으로 보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차분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꼭 공식적인 필요는 없겠죠. 개인이, 팀 단위로, 본부 단위로, 전사적으로 점차 복기의 단위를 확장해가며 논의를 다양하게 펼쳐내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시작도 전에 우려가 되는 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작업이 비판과 책임추궁으로 이해되고, 실제 그렇게 작동하진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저 자신이 제대로 된 복기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이런 우려가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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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앞으로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경제 섹터 전반은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할 텐데요. 이때 네트워크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리도록 자주 듣는 말이지만,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적응력이 필수입니다. 논문의 저자들은 협동조합의 유연하고 민주적인 거버넌스가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결론 내립니다.
저자들은 협동조합이 본질적으로 네트워크 조직이라고 말합니다. 협동조합의 7원칙 중 하나인 ‘협동조합 간 협력(cooperation among cooperatives)’은 연대와 자조의 가치에 기반합니다. 이는 협동조합이 1차 네트워크를 넘어 협회나 연합회,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네트워크를 가져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개별 조직이 아닌 조직 간의 협력 방식에 주목하여, 협동조합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순환경제를 추진하는 방식을 살펴봅니다. 순환경제를 위해서는 여러 조직이 협력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협동조합의 독특성은 중요한 역할을 하죠. 예를 들어, A 생산자협동조합이 재배한 농산물을 B 식품가공협동조합에서 가공하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C 바이오에너지협동조합이 에너지로 전환하며, 최종부산물은 다시 A 생산자협동조합의 퇴비로 활용하는 순환 시스템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조직들이 함께 협력해 일할 때 누가 어떻게 리드할까요? ‘네트워크 거버넌스’에 관한 기존 이론은 3가지 방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1) 참여자 주도형(분산형 거버넌스), 2) 리드 조직 주도형(한 조직이 주도), 3) 네트워크 관리 조직 주도형(NAO)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여느 이론과 마찬가지로 일반기업을 기준으로 했기에 협동조합에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상호 신뢰 관계, 공통의 가치와 목표, 민주적 의사결정이 조직 운영에 중요한 특징이기에 이를 이론에 반영할 필요가 있죠. 예를 들어, 협동조합이 네트워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수익 창출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원래부터 네트워크를 만드는 성격을 가진 협동조합은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거버넌스 방식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봅니다.
기존의 이론을 협동조합 사례에 적용해보면 흥미로운 차이점이 발견됩니다. 퀘벡 CQCM(퀘벡협동조합및상호공제위원회)은 ‘리드 조직 주도형’ 거버넌스에 해당할 텐데요. CQCM은 협동조합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포장재를 재활용하고, 지역 내에서 자원을 순환시키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순환경제 실천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2차 협동조합인 CQCM이 이 네트워크에서 조정 역할을 맡습니다. 이때 조합원들의 민주적 위임에 의한 리더십을 확보하고, 상호 높은 신뢰와 목표 일치로 효과성을 높이지요. 기존 이론에 따르면 리드 조직은 권력 비대칭에 바탕해 중앙집권적인 역할을 하는데 협동조합에 적용해보면 사뭇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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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관리 조직 주도형(NAO)’에 해당하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협동조합만의 독특한 네트워크 확장 방식이 발견됩니다. 퀘벡의 Coop Carbone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라는 단일 목적을 위해 몇몇 대형 협동조합들이 사회적경제 펀드와 파트너십을 맺어 설립한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입니다. 창립 조합원들과 함께 교통, 주거, 농업 등 다양한 산업 분야의 탄소 저감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새로운 조합원들이 민주적으로 운영에 참여하죠. 주목할 점은 Coop Carbone이 자신의 프로젝트에서 시작해 Coop Warwick이라는 또 다른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을 스핀오프(spin-off) 시켰다는 겁니다. Coop Warwick은 농민과 생산자 조합원들이 농업용 바이오메탄 생산과 활용에 참여하는 완전한 순환경제 기업으로 발전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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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례는 미국에서도 확인됩니다. 콜로라도의 Namaste Solar는 처음에는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협동조합 네트워크 개발자’ 역할을 하고 있어요. 녹색 투자부터 태양광 패널 재활용, 공동구매까지 필요한 연결고리들을 협동조합 스핀오프를 통해 하나씩 만들어가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협동조합 재생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했죠. 이러한 사례들은 협동조합 네트워크가 기존 이론의 내용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줍니다.
기존의 이론이 조건이 구조를 결정하는 것이었다면, 협동조합은 구조가 조건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협동조합이란 구조가 만들어지고 나서 서로를 믿게 되고, 목표가 같아지고, 함께 일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기존의 방식과는 정반대인 셈입니다.
연구자들은 협동조합 네트워크의 4가지 혁신으로 1) 시간에 따른 거버넌스 진화(Namaste Solar처럼 노동자협동조합에서 네트워크 개발자로 역할 변화), 2) 다양한 조직 참여(Coop Carbonne처럼 협동조합+사회적경제펀드+다양한 산업 분야가 함께 참여), 3)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CQCM처럼 조합원들의 민주적 위임에 의한 리더십 확보), 4) 지속적인 학습과 적응(스핀오프 등 새로운 필요를 발견하면 새로운 협동조합을 만들어 대응)을 꼽습니다.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은 협동조합이 ‘함께 잘 살자’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참여하려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겠죠.
순환경제는 계속 변화하는 복잡한 분야입니다. 협동조합은 조건에 맞춰 구조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구조를 먼저 만들어서 좋은 조건을 만들어내고, 시간이 흐르면서 유연하게 변화에 맞춰 발전시켜 나갑니다. 이것이 바로 협동조합만의 성공적인 협력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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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는 ‘공익활동가주간’입니다. 심포지엄, 토론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데요. 그중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진행하는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가 있어요. 5월쯤 인터뷰어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신청을 했고 기쁘게도 인터뷰어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최근 활동가 두 분을 인터뷰하고 관련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공익활동가주간에 제가 정리한 글도 올라가지 않을까 싶은데요. 기회가 되면 내용 공유하겠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서 내가 하는 일을 직무로 구분 짓기 보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현재 상황에서 저 자신이 전략으로 선택한 것으로, 좀 더 뾰족하게 일을 봐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제 목표가 명확하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은 또 달라질 수 있겠죠. 결국은 방향성을 어디에 두는지가 중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제대로 각 잡고 인터뷰를 했다기보다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두서없이 묻고 듣는 시간이었는데요. 업무로만 만난 사이에서는 미처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길 나눌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어요.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기에 평상시에 주위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 좋았던 것일지도요. 앞으로 좀 더 이런 기회를 만들어봐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무언가 다시 다짐하고 시도해도 괜찮을 것 같은 유월 하순이네요. 하반기를 다시 준비하며 말이죠!☺️
+지난 뉴스레터에 의견 남겨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하단 말씀, 늦었지만 꼭 전하고 싶어 적어둡니다.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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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논문
📌문의 diveintocoo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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