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살펴본 논문은 <Problematizing the Cooperative Firm: A Marxian View on Paradoxes, Dialectics, and Contradictions>입니다.
논문은 협동조합, 특히 몬드라곤 그룹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직면하는 근본적인 모순과 역설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기존의 협동조합 연구를 세 가지 관점으로 분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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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적 관점(Utopian perspective): 협동조합을 자본 소유 기업과 대비되는 급진적 대안으로 보고 포스트 자본주의의 해결책으로 간주하는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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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적 관점(Skeptical perspective): 협동조합이 시장경제에서 생존하려면 불가피하게 파산하거나 자본주의 조직 형태로 퇴보한다는 비판적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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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적 관점(Nuanced perspective): 협동조합이 시장경제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민주적 거버넌스, 연대, 평등 원칙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긴장을 인정하는 관점
연구자들은 유토피아적 관점과 회의론적 관점은 협동조합의 내부 역학과 외부 환경을 연결하지 않는 방법론적 한계를 갖는다고 주장합니다. 유토피아적 관점에서는 협동조합의 연대 실천이 시장 경쟁 환경에선 필연적으로 경쟁적으로 된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고, 회의적 관점에선 경쟁 역학이 새로운 형태의 연대 확장·발전을 통해서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거죠. 연구자들은 복합적 관점을 기반으로 하면서 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 관점에서 분석을 시도합니다.
본 연구의 핵심은 ‘연대 역설(solidarity paradox)’이란 개념을 통해 협동조합이 내부적으로는 연대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면서도, 외부적으로는 시장 경쟁의 압력에 대응해야 하는 구조적 모순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 연대 역설은 협동조합이 조직적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 부분적이고 제한된 형태의 연대를 통해 경쟁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상황을 의미합니다. 저자들은 몬드라곤 사례를 통해 이 역설이 구체적으로 ① 협동조합 고용(조합원 일자리 보호를 위해 임금노동자를 활용), ② 협동조합 노동분업(민주적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효율성을 위해 자본주의적 관리 기법 도입), ③ 임금 평등주의(평등을 추구하면서도 유능한 경영자 유치를 위해 임금 격차 확대*), ④ 계산된 연대(Irizar 사례처럼 연대기금의 혜택을 받은 후 수익성이 높아지자 몬드라곤 탈퇴), ⑤ 경쟁적 연대(Fagor 파산 사례처럼 연대 원칙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이 없는 협동조합은 결국 생존이 어려움)라는 다섯 가지 형태로 나타남을 보여줍니다.
*초기에는 최고-최저 임금 비율이 3:1이었으나, 점차 4.5:1, 6:1, 현재는 12:1로 확대되었습니다. 일반 기업의 임금 격차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지만, 점차 타협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몬드라곤의 국제화 과정에서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이들에게는 조합원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이 대표적입니다. 몬드라곤 그룹이 중국과 멕시코 등 저임금 국가에서의 생산 아웃소싱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몬드라곤 관계자들은 해외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편으론 비용 절감이 경쟁력 유지에 필수적이라고도 말하죠. 노동자가 자본보다 중요하지만, 또 자본도 중요하다는 이중 기준을 적용하기에 나타나는 모순과 역설이겠죠. 몬드라곤의 초점은 ‘바스크’ 지역에 맞춰져 있어요. 글로벌 경제 질서를 협동조합 방식으로 온전히 재편한다기보다는 몬드라곤 협동조합 ‘조합원’의 삶을 개선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그게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는 상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몬드라곤도 자본주의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본래의 이상에서 일정 부분 타협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협동조합은 내부적으로 연대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면서도 외부적으로는 경쟁 시장에서 생존해야 하는 구조적인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몬드라곤은 이를 자본주의적 패턴을 재생산하면서도 새로운 관리 방식과 연대 형태를 개발했습니다. 특정한 개인의 윤리적 선택으론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일 텐데요, 집단의 실제 변화 구현과 수용이란 책임감 있는 태도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모순 속에서도 점진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측면에서 몬드라곤의 의미가 큰 것이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