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는 젠더평등위원회(Gender Equality Committee, GEC)가 있고, 여기에서 매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한 성명을 발표합니다. 자조, 자기책임, 민주주의, 평등, 연대의 가치에 따라 운영되는 협동조합은 여성의 소유권을 보장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만드는 데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GEC의 올해의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올해의 테마는 <For ALL Women and Girls: Equality. Rights. Empowerment>입니다. 지난 1995년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유엔 세계여성대회에서 채택된 베이징 선언을 기념하고, 협동조합의 구성원인 여성의 역할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습니다. 젠더 평등은 사회 정의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발전, 번영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번 선언은 강조합니다. 여성이 동등한 기회를 누린다는 것은 사회 전체가 혜택을 받는다는 것이니까요. 협동조합은 형평성과 참여 측면에서 제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자유롭고 민주적인 참여에서는 갈 길이 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극복해야 할 과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협동조합을 응원합니다.
이번에 살펴볼 자료는, 지난해 6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발행한 보고서입니다. 인도의 SEWA(Self-Employed Women’s Association), 그러니까 자영업 여성 노동자 협회 사례를 정리한 자료입니다.
변호사이자 노동운동가인 엘라 바트(Ela Bhatt) 여사가 1972년 시작한 SEWA는 비공식 경제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자’로 인정받고,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혜택을 받는 것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SEWA 회원들이 최저임금과 적절한 근로조건을 협상하려 하자 일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고, 노동자들은 직접 기업을 설립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협동조합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던 거죠. 당시 인도에는 비공식 노동자들의 노동조합도 없었기에, 비공식 ‘여성’ 노동자의 조합이 등장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엘라 바트 여사가 노동조합 등록관을 찾아갔을 때, 등록관이 그녀에게 누구를 상대로 싸울 것인지를 물었다고 해요. 이때 그녀는 “우리는 비공식 경제 부문에서 일합니다. 비공식 경제의 40%가 자영업자입니다. 우리에게는 고용주가 없지만,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합을 조직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SEWA의 첫 번째 협동조합은 구자라트주(Gujarat)에 기반을 둔 SEWA 은행입니다(1974년). 인도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최초의 여성 협동조합 은행인데요, 4천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10루피씩을 내어 설립한 은행은, 이제 50만 명이 넘는 예금자들과 함께하는 은행으로 성장했습니다. SEWA 은행은 가난한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전방위 서비스의 하나로 저축, 대출, 소액보험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고 해요. 여전히 이용자의 60%가 디지털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은행 직원들이 직접 차용인의 집을 방문해 수금하는데요, 이것이 은행과의 관계를 단순한 거래 관계가 아니라 상호 신뢰 관계로 만드는 데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SEWA는 1991년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33개 협동조합을 설립합니다. 그리고 협동조합의 설립과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SEWA 협동조합 연합회(Cooperative Federation)를 1992년에 결성했어요. 2차 수준의 협동조합 연합회가 수립한 목표는 1차 협동조합을 강화하는 것에 있습니다. 참여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협동조합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다른 협동조합으로부터 다양한 서비스를 받습니다. 예를 들어, 가사노동자로 ‘SEWA Homecare’에 참여하는 조합원은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동시에 의료협동조합에서 건강 정보를 얻고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약국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지요. 협동조합에서 조합원 누구나 리더가 되어 자신들이 속한 협동조합을 위해 일할 수 있고요.
이를 위해 연합회는 설립 후 10여 년간(1993-2002) 노동자 조합원에게 협동조합은 무엇인지 그 가치와 구조, 소유권을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학습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조합원과 리더들이 스스로 협동조합을 운영하도록 지원해 왔지요. 소위 말해, 교육받은 중산층이 만든 조직이 아니기에 협동조합 설립 후 수익성을 갖추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기간을 버틸 수 있도록 연합회가 제 역할을 해준 것이죠. 그 이후 10년 동안(2003-2012) 연합회는 사업계획, 전략개발은 물론 협동조합 조합원의 기술 향상에 중점을 두어 조직을 운영합니다. 협동조합이 경쟁 속에서 운영되어야 하는 비즈니스이기에 조합원들 사이에서 일종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한 도전 과제 중 하나였다고요. 그리고 최근까지(2013-2022) 연합회는 급변하는 외부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의 디지털화에 집중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 정부가 공공조달을 위한 일종의 플랫폼을 만들자 여기에 대응하기 어려운 개별 협동조합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죠.
SEWA는 구성원들이 소속감과 소유감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동시에 공유된 기업가정신(shared entrepreneurship)의 가치에 기반해 성공적으로 비즈니스를 운영할 수 있도록 이 두 가지 측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의 구성원이 되면서 비공식 경제에서 공식 경제로 전환하여 기능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여성들은 협동조합을 통해 정기적인 수입을 얻기 시작하고, SEWA의 보험이나 연금 제도에 연결되면서 안정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50년 가까이 SEWA는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협동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천히 단단하게 변화를 만들어 온 SEWA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하는 맘이 절로 듭니다. 국내에도 여성이 중심이 된 사회적경제 조직 사례가 많지요. 여성이 중심이 된 협동조합이 지역사회에서 만들어가는 변화의 경우도 왕왕 볼 수 있고요. 서울의 목화송이협동조합, 제주의 경력 있는 여자들 협동조합이 지금 당장 떠오르는데요. 전국 곳곳에 나와 우리의 필요를 각자의 방식으로 채워가는 여러 협동조합이 있을 겁니다. 도전, 그리고 때론 실패하면서도 가능성의 씨앗을 꽃피우고 있는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할 뿐입니다.
참, 앞서 언급한 ICA의 GEC는 2025년 세계 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지역별 활동 전략을 지난해 12월 발표했습니다. 올해 협동조합에서 여성의 영향력에 대한 공공의 인식 제고를 위한 캠페인을 진행한다거나 협동조합에서 여성 참여와 관련된 주요 이슈를 연구 후원한다고 하니 앞으로 협동조합에서 여성이 어떻게 가시화될 수 있을지 관심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