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과 우연한 만남이 주는 예상치 못한 기쁨.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개별성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세계를 확장하고 싶은데 말이죠. 요즘엔 그게 가능할까 싶어요. ‘낯선’, ‘우연한’이 가져오는 안전에 대한 위협, 그리고 피로감이 큽니다. 아, 네, 제가 그렇습니다(하하).
제가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갈고닦아 만든 안전망에서 안온한 생활을 보내고 있거든요. 여기서 주는 편안함에서 벗어나질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이 편안함이 적지 않게 제 행동반경과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내가 만든 안전한 경계선 안에서, 비슷한 생각의 사람들과 매번 비슷한 패턴의 대화를 나누고 행동하니까요. 하지만 또 그 틀을 깨고 나아가기엔 겁이 나요. 그 누구도 안전을 담보해주지 않으니까요.
요즘 뉴스를 보면 자신이 속한 집단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닫고 비판만 쏟아내는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다름이 만들어내는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선 부딪히고 때론 깨지는 과정도 있어야 할 텐데 이런 과정을 견디기가 참 녹록지 않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그렇고,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 역시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곤 하는데요. 사적관계를 넘어 사회 구성원 간 서로 신뢰하고 협력할 수 있는 ‘신뢰’는 어떻게 쌓이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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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경제 조직은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나의 원칙처럼 이해되고 있죠. 정말일까요?
그래서 오늘 살펴본 논문은, < 지역공동체 활동이 사회적 신뢰를 증진시키는가?: 용인특례시 사례를 중심으로>입니다. 연구자들은 지역공동체 활동 (자발적 모임, 공공모임, 사회적경제 모임)이 각각 사회적 신뢰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본 논문에서 사회적 신뢰의 유형은 3가지로 구분되는데요. 각각 1) 일반화된 신뢰 (사적관계와 관계없이 개방적 태도로 낯선 사람을 신뢰하는 것), 2) 특정화된 신뢰 (사적관계를 바탕으로 이미 알고 있는 사람 간의 신뢰로 부모, 배우자, 학교동창, 직장동료 등을 대상으로 함), 3) 제도적 신뢰 (공적 주체 및 기관 등에 대한 시민의 신뢰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등에 관한 신뢰)로 구분됩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회적경제 모임에 참석한 경우 특정화된 신뢰와 제도적 신뢰에 대한 통계적 유의미성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일반화된 신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자들은 지역사회 문제해결이라는 구체적인 목적을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한다는 특성을 가진 사회적경제 모임은 문제해결 과정에서 지역의 낯선 이웃과 지속적인 교류·협력을 경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일반화된 신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참고로, 이 연구는 총 800명 대상의 설문에서 비롯된 결과를 분석하고 있는데요. 이 중 사회적경제 모임에 참석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28명으로 3.5%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표본 수가 크지 않아서 좀 더 많은 참여자를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됐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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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은 일상적 경제활동에서 민주적 참여 경험을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시민으로서의 역량이 강화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죠. 책임감을 갖고 나의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어쩌면 참 피곤한 일입니다. 시간도 많이 드는 일이고요. 그래서 1인 1표의 원칙이 작동하고 자율성과 독립성을 이야기하는 협동조합을 경험한다는 것은 좀 더 신뢰에 바탕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일지도요.
논문을 살펴보다 관련 자료를 좀 더 찾아보게 됐고 그러다 영국 사례를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흘러흘러 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여기저기 사회의 분열, 그러한 사회에 대한 환멸이 가득합니다. 영국의 협동조합당 (Co-op Party)은 최근 신뢰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커뮤니티 브리튼 (Community Britain)’이라는 캠페인을 발표했습니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 Stories from Community Britain>이라는 자료가 나왔는데요. 영국 전역의 커뮤니티 리더, 전문가, 대표에게 커뮤니티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고 기후변화, 경제 침체, 사회통합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있어 실제 커뮤니티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정리한 일종의 사례집입니다. 커뮤니티가 단순히 감성적인 요소가 아니라 정치·경제적 힘을 갖고 있다는 맥락에서 협동조합의 역할을 조명하고 있어요. 소유권과 자원을 가진 커뮤니티가 분열과 쇠퇴에 어떻게 직접적인 대안을 제공하는지를 살펴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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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집을 다운받으면 여러 사례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지역 전반의 낙후로 에너지 빈곤에 시달리는 영국 브리스톨 북서쪽에 있는 로렌스 웨스턴(Lawrence Weston)에 설립된 태양광 발전소는 목소리를 낼 수 없고, 권한이 없는 권력 불균형 상태에서 직접 민주주의 실천의 대안적 모델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보여줍니다. 기후 운동가들은 탄소 절감을 원하지만, 주민들은 그저 생활비를, 돈을 절약하기 원합니다. 이때 기후 행동과 지역사회 발전이 분리된 것이 아니며 단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했을 뿐이라는 통합적인 이해를 돕는 작업이 이뤄지면서 공동체의 대립 구도를 해소하고, 집단적 해결 방안이 어떻게 실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아무도 우리를 돕지 않는다는 외부 의존적 관점에서 스스로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능동적인 변화의 주체로 서게 됩니다. 이제 지역에선 태양광발전소는 물론 풍력 터빈을 개발해 지역의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역 자산을 사용해 지역사회에 지속가능한 수익을 창출하게 된 거죠.
사례집에서 또 하나 관심 가는 꼭지가 ‘어떻게 지역사회가 극우에 맞서 싸울 수 있는가’에 관한 내용이었는데요. 지난 2024년 8월, 영국의 사우스포트 (Southport)에서 세 명의 어린 소녀가 숨진 사건이 발생한 후 영국 전역에서 발생한 인종차별적 폭동은 반이민·반이슬람 증오와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사람들에 의해 극우 폭동과 무질서 사태를 일으켰습니다. 그 과정을 겪으며 ‘ HOPE not hate’란 단체에선 < HOPE 2024: The case for community resilience>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는 커뮤니티의 회복탄력성을 위해 사회적 연결성(social connectedness), 자원에 대한 접근성(access to resources), 그리고 대리인과 권한부여(agency and empowerment)라는 세 가지 기반이 중요하단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회복탄력성 있는 커뮤니티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모이고, 위기를 이용해 분열을 시도하는 이들에 맞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사회·정치·경제 전반에 걸쳐 압력이 높아지면서 우리 사회의 회복탄력성이 전반적으로 약화됐죠. 이건 영국이나 우리 사회나 크게 다르지 않아요. 커뮤니티가 극우에 저항할 수 있도록 세 가지 기반이 지역 안에 잘 갖춰져야겠지만, 이것이 종합적으로 역할 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과 지원은 필수적일 겁니다. 그래서 정치가 중요하죠. 삶의 곳곳이 정치 아닌 것이 없단 생각입니다.
영국의 협동조합당을 언급하고 보니 이 부분을 살짝 살펴봐야 할 것 같아서요. 협동조합 운동의 일부에선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현재 ICA의 7원칙에서 명시적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언급하곤 있진 않아요. 물론 ‘자율과 독립’이란 원칙이 존재하죠. 협동조합의 정치 참여는 각 국가의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맥락에 따라 차이를 보입니다. 단일한 접근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스페인의 몬드라곤은 위치한 바스크 지방의 지역발전에 초점을 두고 특정 정당과의 연계보다 협동조합 가치에 기반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이해됩니다. 협동조합 활동 자체가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일종의 정치적 행위는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사회경제적 변화를 위한 정치적 참여 필요성과 정치적 중립성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려 노력하는 것이겠죠.
사실 영국의 협동조합당은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중 정부의 경제 통제 정책으로 협동조합이 차별적 대우를 받자 이에 직접 대응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기존 정당이 협동조합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았기에, 협동조합의 이익을 보호하는 한편, 의회에서 협동조합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치적 대표성을 만들어야겠단 필요성에서 설립한 거죠.
협동조합당은 1927년부터 노동당과 선거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데요, 이 관계에서는 후보자들이 ‘노동당 및 협동조합당(Labour and Co-operative Party)’ 후보로 선거에 출마합니다. 물론 협동조합당은 자체 회원, 정책과 거버넌스를 갖춘 독립 정당입니다. 선거에서는 선거 동맹으로 함께 활동하는 것이죠. 이 관계가 거의 100년 동안 지속되어 왔으니 영국 정치에서 가장 오래 유지 중인 정치 동맹 중 하나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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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고, 버티고, 대응하고, 회복하고. 회복탄력성은 사회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필요한 것 같아요.
벌써 2월의 마지막날이네요. 당장 내일부터 3월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변화하는 날씨와 환경에 어찌어찌 또 적응하고 반응하겠지만요. 외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라는 걸 종종 망각합니다. 내가 변화하지 않으려고 버티는 건 어떨 때 스스로 상처를 내는 것이기도 하고, 좀 맛이 가게(...) 만들기도 해요. 변화하는 외부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3월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뉴스레터를 마무리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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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논문
📌문의 diveintocoo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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