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프 알자스는 프랑스 알자스 지역에서 100년 넘게 운영된 소비자협동조합이자 대형 유통기업이었습니다. 1902년 스트라스부르 노동자 125명이 생필품을 싸게 구하려고 세운 소비조합에서 출발해 20세기 전반에 크게 성장합니다. 1963년 까르푸의 첫 하이퍼마켓이 문을 연 뒤 프랑스 소비자협동조합은 전반적으로 쇠퇴했는데, 쿠프 알자스는 드물게 버틴 예외였죠.
2000년대 말까지만 해도 쿠프 알자스는 하이퍼마켓 6곳, 슈퍼마켓 22곳, 소형 매장 180여곳을 보유하고 직원은 4천명이 넘었습니다. 알자스 사람들의 장보기 습관에 깊이 자리 잡은 한때 지역 최대의 고용주였죠.
전환점은 2008년이었습니다. 쿠프 알자스는 구매조직을 르클레르(E.Leclerc)로 옮깁니다. 르클레르도 협동조합이지만 성격이 다릅니다. 소비자가 아니라 매장을 소유한 독립 점주들이 조합원인 ‘사업자협동조합’이죠. 르클레르는 자사 간판을 달 것을 요구했고, 매장은 여전히 쿠프 알자스 소유였지만 고객 눈에는 그냥 르클레르 매장이 됩니다. 1990년대부터 큰돈을 들여 구축한 물류·정보 시스템도 르클레르의 시스템과 통합했는데 이 과정에서 빚이 크게 불었다고요. 리레는 경영진 문제도 짚습니다. 당시 경영자가 카리스마를 앞세워 내부 민주주의를 소홀히 했고 후계자를 잘못 골라 그가 물러난 뒤 격렬한 내부 갈등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리레는 2008년 제정된 경제현대화법(LME)을 결정타로 꼽습니다. 이 법은 대형마트가 납품업체에서 받아온 후방 마진(판촉·진열 같은 ‘상업적 협력’ 명목의 대가)을 없애고 납품대금 지급 기한을 제한했습니다. 대금을 늦게 치르며 굴리던 운전자금이 줄면서 이미 빚이 많았던 쿠프 알자스의 자금 사정이 더 나빠진 것으로 풀이됩니다. 쿠프 알자스는 2008년 이후 해마다 약 2500만 유로의 적자를 냈고, 부채는 1억4천만 유로에 이르렀습니다.
쿠프 알자스는 2011~2013년 하이퍼마켓과 슈퍼마켓을 르클레르에, 2014년 소형 매장 대부분을 까르푸에 전부 넘기며 버텼습니다. 하지만 2014년 10월 지급불능을 신고하고 회생절차에 들어갔고 2015년 결국 법원에서 청산이 결정됩니다.
리레는 프랑스에서 소비자협동조합 모델이 여전히 유효한지 묻습니다. 예전엔 협동조합만 주던 적립 카드를 이제 모든 대형마트가 주고, 무엇보다 마지막 위기에서 작은 소비자 단체 한 곳을 빼곤 어떤 조합원도 쿠프 알자스를 지키려 나서지 않았다는 겁니다. 협동조합만의 정체성을 조합원들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진단이죠.
청산 후 10여년이 지난 지금, 쿠프 알자스가 떠난 자리에 다시 협동조합이 들어섰습니다. 스트라스부르 라인강 항구 지역에 있던 옛 쿠프 알자스 본사 건물에 2023년 문을 연 ‘칼레이도스쿠프(KaléidosCOOP)’입니다. 지역고용지원기관과 사회연대경제 단체, 지자체 등이 조합원으로 참여한 공익협동조합(SCIC)이 운영하는데요. 고용·창업 지원과 생태 전환, 이웃 독일과의 국경을 넘는 협력을 내걸고 사무실과 코워킹 공간, 행사장, 카페와 상점을 꾸렸습니다. 지금은 사회연대경제와 고용, 창업 분야 주체 100여곳이 이곳에서 일한다고 합니다. 9ha에 이르는 옛 쿠프 부지 전체도 스트라스부르시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예술가 작업실 등이 들어서는 새 동네로 바뀌는 중이고요. 이곳의 주소는 ‘협동조합로 5번지(5 rue de la Coopérativ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