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서 협동조합은 단지 경제조직이 아닙니다. 영국 위임통치 시기부터 현재까지 식민 권력이 주민을 통제하고 달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고, 반대로 점령에 맞서 자율성을 쟁취하려는 저항의 거점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팔레스타인 협동조합 운동의 역사를 추적하며,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 자체가 식민주의에 맞선 투쟁의 장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찬찬히 시대별 협동조합의 흐름을 살펴봅니다. 영국 위임통치 시기에 유대인 협동조합이 활발히 설립됩니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팔레스타인 노동자 대신 유대인 노동자를 고용해 정착민들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려는 목표였습니다. 동시에 영국은 팔레스타인 농민들의 생활 개선, 생산성 향상 등을 목적으로 내세워 협동조합 활성화를 추구하는데 실제로는 영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농민을 달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1933년 이후 영국이 아랍 농민에게 협동조합을 확대하면서, 협동조합은 팔레스타인인을 시장에 의존하게 하고, 시오니스트 정착 식민화를 뒷받침하는 도구가 됩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전후로 약 75만명의 팔레스타인들이 고향에서 추방되거나 피난을 떠납니다. 이 과정에서 500개 이상의 마을이 파괴되었고, 팔레스타인 사회가 근본적으로 해체됩니다. 이를 나크바(Nakba)라 하는데요, 나크바 이후 서안지구는 요르단, 가자지구는 이집트가 통치하는 시기(1948~1967)가 있습니다. 당시 협동조합은 주민을 달래고 정치적 동원을 억제하는 도구로 활용됩니다.
이스라엘 점령기(1967~1993)에 공식적인 협동조합은 외부에 대한 의존을 심화하는 한계를 가져옵니다. 한편, 비공식 협동조합이 등장합니다. 식품 가공이나 농업 등의 분야에서 소규모 협동조합이 설립되는데요, 비공식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생계를 지원하고, 이스라엘 노동시장 취어의 대안이 됐습니다. 여성에게는 독립적 수입원과 정치 참여 공간을 열어주었고요. 미등록이었기에 이스라엘 군정의 감시와 통제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1987년 12월 이스라엘 트럭 운전사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노동자 4명을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지난 20년간 누적된 억압에 맞선 대중 봉기(1차 인티파다)가 일어납니다. 인티파다의 핵심 전략은 이스라엘 당국으로부터의 자율성 확보에 있었는데 이를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보이콧과 대안 창출(경제적 자급자족 추구)이 전략이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협동조합이 중요한 역할을 하죠. 동네와 마을 단위의 공동 텃밭에서 직접 농산물을 재배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데 이것 역시 협동조합이라 불리게 됩니다. 농장, 인쇄소, 식품 가공 등 다양한 분야의 비공식 협동조합이 활발해졌고 이들 모두 미등록 상태로 이스라엘 군정의 감시와 통제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협동조합은 저항의 방식이었으며 투쟁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기반이 됩니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가 들어서죠. 다른 시민사회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협동조합도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팔레스타인인을 투사에서 ‘기업가’와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고, 사회 활동을 탈정치화하는 것입니다. 외부로부터의 원조 구조와 시장 참여 형태 모두 협동조합의 의존성을 높입니다. 오슬로 협정 이후 7년이 지났지만, 팔레스타인인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정착촌은 오히려 급격히 확대되었고, 이동 제한은 더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2000년에 2차 인티파다가 일어나고, 그 여파 속에서 비공식 협동조합이 다시 등장합니다. 경제적 파괴와 이동 제한 속에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죠. 청년을 중심으로 한 협동조합은 생존을 목적에 두고 대부분 농업 분야에서 일부는 카페, 원예, 엔지니어 등의 분야에서 생겨납니다.
저자는 진정한 의미의 협동조합 운동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가자지구의 제노사이드, 서안지구의 폭력과 경제 위기 속에서 협동조합이 계속 만들어질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고요. 논문에서 볼 수 있듯이, 협동조합은 때로는 저항의 도구였고 때로는 지배의 도구였습니다. 협동조합을 마냥 ‘좋은 것’,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맥락에서, 누구의 주도로,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협동조합은 전혀 다른 역할을 합니다. 여느 조직과 다르지 않죠.
그러나 논문이 보여주듯 위기의 순간 비공식 협동조합이 선택한 것은 결국 ‘있는 것’에서 찾기였습니다. 외부 원조가 아니라 자신들의 노동과 관계, 땅과 기술로 자율성을 만들어가는 것 말이죠. 우리나라에서도 협동조합이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정책의 도구가 되는 것과 풀뿌리 조직으로 자율적으로 기능하는 것 사이에 긴장이 분명 있습니다. 그 긴장을 어떻게 조율해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가진 것들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