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튼 교수는 ‘협동조합 도시(Cooperative Cities)’라는 개념을 제안하는데요, 협동조합이 많은 도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해 조례를 제정하거나 예산을 배정해 지원을 가시화(legibility)한 도시를 의미합니다. 지난 2012년, 첫 번째 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서울시는 ‘협동조합 도시 서울’을 선언하고 협동조합 지원 정책을 도시재생 등과 결합해 적극적으로 추진했었는데요, 어찌 보면 협동조합 도시의 원조(...)는 서울시 일지도요!
논문은, 국제개발론에서 차용한 조성 환경(Enabling Environment)을 사용해 지방정부의 역할을 3가지로 분류합니다. 1) 협동조합에 유리한 법적 프레임을 마련하거나 진입 장벽이 되는 규제를 수정하는 위임/규정(Mandating) 전략, 2) 예산 지원, 공공 조달 우대, 기술 지원, 저금리 대출 등 실제 자원을 제공하는 촉진(Facilitating) 전략, 3) 대중의 인식을 제고하고 공무원을 교육하며, 협동조합 생태계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홍보/지지(Promoting) 전략이 그 기준입니다.
서튼 교수는 미국의 12개 도시의 정책 문서를 분석해, 지방정부의 참여 방식에 따라 3가지 유형을 만들었는데요. 1) 지방정부가 주도하여 협동조합을 만드는 개발자형(Developer), 2) 민간 주도의 운동을 지방정부가 지지하는 지지자형(Endorser), 3) 민관이 협력해 생태계를 키우는 육성자형(Cultivator)이 그것입니다.
개발자형의 대표 사례로는 우리나라에도 많이 소개된 ‘클리블랜드’를 언급합니다. 시와 클리블랜드 재단, 지역 병원과 대학(앵커 기관)이 주도하여 세탁, 에너지, 농업협동조합을 만들었죠. 이때 클린블랜드시는 HUD(주택도시개발부) 대출 보증과 신시장 세액 공제(New Market Tax Credits) 등을 활용해 약 1,200만 달러의 연방 자금을 유치합니다. 그리고 유휴 주거지를 농업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닝(Zoning) 조례를 수정하고, 토지 은행(Land bank)을 통해 부지를 제공했고요.
클리블랜드 사례는 앵커 기관의 구매력(Procurement)에 집중해 설계됐다고 할 수 있는데요. 초기에는 앵커 기관들이 약속했던 계약(세탁, 급식 등)을 이행하지 않아 현금 흐름 문제가 심각했었고, 생존에 집중하느라 노동자를 조합원(owner)으로 만드는 사회적 미션이 지연되기도 했다고요. 서튼 교수는 논문에서 앵커 기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개발자형 모델은 민간의 주체성을 어떻게 강화하고 재정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겠죠.
육성자형 도시의 가장 대표적 사례는 뉴욕시입니다. 2015년 시의회 주도로 120만 달러의 예산을 편성해 ‘노동자 협동조합 비즈니스 개발 이니셔티브(WCBDI)’가 시작했는데요. 2018년에는 예산이 300만 달러 이상으로 증액됩니다. 뉴욕시는 시가 나서서 협동조합을 만드는 대신 기존의 전문 민간단체 10여곳에 자금을 지원해 그들이 현장에서 교육, 컨설팅, 법률 자문 등을 수행하도록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WCBDI를 통해 70여개의 새로운 노동자협동조합이 설립됐고, 기존 협동조합도 지원을 받게 됐죠. 뉴욕시는 소상공인 서비스국(SBS) 내에 협동조합 지원을 내재화해 생태계를 탄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논문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지자체도 이 기준에 따라 분류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더라고요. 중앙 정부의 정책과 예산 기조가 부침을 겪은 시기가 분명 있지만, 지역소멸과 지방재정위기 등으로 인해 협동조합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방정부가 협동조합 대상으로 제도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초기 자본을 제공하는 데 역할한다면 협동조합 생태계 조성에 분명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어요. 특정 정치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지속가능한 협동조합 생태계는 법과 제도, 그리고 시민사회의 탄탄한 기반 위에 만들어질 것입니다. 지난 1년여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앞으로도 그 변화가 더 거세지면 거세지지 약해지진 않을 텐데요. 협동조합이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함께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