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저자들이 이야기하고 선택한 삶의 방식을 제가 백프로 수용할 순 없어요. 하지만 나보다 앞서 비슷한 고민을 던지며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울림이 있습니다. 각자의 분야와 관심사는 다르지만, 생활인이자 직업인으로 꽤 비슷한 고민을 하니까요. 정답은 없지만, 제 고민에 관한 힌트를 얻고 싶거든요. 그래서 펼쳐 본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만났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긴 호흡으로 가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10년 후, 20년 후의 나는 또 어떤 사람일지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꾸준함이라는 역량에 집중해 보길 권한다. 다양한 경험도 중요하지만, 이런 경험들을 관통하는 꾸준함이 핵심이라고 믿는다. 2023년 연말에 타계한 전설적인 투자자 찰리 멍거는 워렌 버핏의 최측근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똑똑할 필요는 없다. 아주 오랫동안 평균적으로 조금만 더 현명하면 된다.” < 실패는 나침반이다, 66쪽>
꾸준히 긴 호흡으로 내 살의 방향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매번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자문하며 나만의 관점을 만들어가는 구체적인 과정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얼렁뚱땅 지나칠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조금 더 성실하고 현명하게 실행하고/질문하고/집중하는 사이클을 굴려볼 필요가 있겠다 싶더라고요. ‘서두르지 않고 긴 호흡으로 가는 자세’라는 말을 다시 곱씹어봅니다.
꾸준히 나아가기 위해선 가만히 멈춰 있어선 안 됩니다. 뭐라도 해봐야 하죠. 그렇게 무언가 시도하다 보면 실패도, 성공도 자연스레 겪을 수밖에 없어요.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완벽해야만 한다는 강박 그리고 실패에 대한 불안이 공기 중에 떠다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찰나의 어긋남이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 말이죠. 잘해야 한다는, 실패해선 안 된다는 분위기에서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선택은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이들 사회가 공통적으로 학업이나 경제적 성과 등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실패에 관대하지 않아 젊은이들에게 ‘완벽주의적 공포’를 심어 줬다고 지적한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MZ세대의 많은 이들이 (사회적 압박으로) 비판에 민감하고 지나치게 자기비판적이며 실패를 두려워한다”면서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매우 낙담하고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 “실패 두려워”… 스스로 골방에 갇힌 MZ>라는 제목의 기사 한 부분을 그대로 가져왔는데요, “학업이나 경제적 성과 등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실패에 관대하지 않아 젊은이들에게 ‘완벽주의적 공포’를 심어 줬다”는 부분에 눈길이 갑니다. 비단 특정 세대에게만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 같아요. 완벽주의적 공포 또는 불안, 그런 것이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흠결 없는 나는 존재할 수 없는데 그 존재할 수 없는 ‘나’를 지향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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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를 내야 하고 지속가능해야 하고, 이렇게 우리의 사고가 지속이라는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공포와 불안을 품게 되는 것일까요? (그래서 저도 자꾸 자기계발서를 들춰보면서 불안을 일시적으로나마 억눌러보고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 현재보다 나은 미래가 전제된 구조가 생각의 디폴트값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놓인 현실은 발전을 이야기하기엔 적절치 않습니다. 저출생과 고령화, 지역소멸, 그리고 기후위기에 이르기까지.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한 상황이 아닌데 말이죠. 지금 필요한 것은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동안 옳다고 생각했던 방식에서 벗어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왜’라는 물음이 없는 발전 강박에서 벗어나게 되지 않을까요?
오늘 살펴볼 자료는 논문이 아니라 연구보고서입니다. 올해 초,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 올라온 < 연대와 호혜의 경제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자료입니다. 앞서 우울한(..) 이야길 잔뜩 꺼내놓고, 정답 없는 질문을 던져놓고, 연대와 호혜에서 해결 방안을 찾고 싶어라 하다니요! 나이브한 접근이 아닌가 싶지만, 그럼에도 연대와 호혜가 우리가 가진 강력한 선택지가 아닌가요? (약간 답장너...식의 접근이네요😅)
사회적경제에서도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긴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지속가능성은 연대와 호혜의 유지와 확장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일하고 학습하며 같은 단어임에도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보통명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런 측면에서, 사회적경제의 지속가능성이란 시대와 사회 환경에 따라 필요한/요구되는 사회적 목적(=왜)을 달성하기 위해 협업과 네트워크를 수단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닐까요? 사회적경제 조직, 더 넓게 사회적경제 생태계의 작동은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서, 지금 이 사회 구조 속에서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 속에 구체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경제의 존재 이유를 강화하기 위한 네트워크와 협업의 사례를 살펴본 보고서는 8건의 협업 사례와 7건의 네트워크 사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대표 사례를 선정하기에 앞서 설문조사를 통해 내용을 분류하는 과정을 거쳤고요(관련 내용은 보고서의 18~36쪽에 담겨 있습니다).
여러 사례 중 ‘ 발달장애지원이종협동조합연합회’의 협업사업이 인상 깊더라고요. 발달장애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동조합 25곳이 모여 연합회를 만들고 돌봄, 일자리, 문화예술, 교육서비스라는 4개 분과로 나뉘어 촘촘하게 협업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회원 협동조합의 최종 목표 중 하나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주택 혹은 지원주택을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첫 시도로 지난해 사회주택포럼을 열었었다고 합니다. 연합회 이사장이자 회원사인 ‘꿈고래사회적협동조합’의 임신화 이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단순히 비즈니스만 하기 위해서 협동조합을 만든 게 아니라 결사체로서의 정체성도 항상 50대 50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꿈고래의 사업에만 전념했다면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가지고 가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쏠렸을 것 같습니다. 연합회 활동을 통해 다른 회원사들이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조직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때가 많은데, 저는 이것만으로도 연합회가 있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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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24일, 발달장애지원이종협동조합연합회 주관으로 열린 '주거집담회: 우리는 어디서 살아가는 것을 꿈꾸는가?' 행사 웹자보. 아쉽게 관련 자료를 찾을 순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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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까지 성장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연대와 호혜라는 조금은 불편한 접근 방식이 어쩌면 새로운 시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낮춰주는 방법은 아닐까요? 나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이라는 것, 그렇게 연결된 우리로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넘어볼 수는 없을까요? 각개전투하듯 버텨야 한단 이야길 종종 꺼내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래도 함께 지지고 볶으며(..)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과정 자체가 우리가 목적한 본질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어요. 오늘도 답 없는 질문을 여기저기 던지며 마무리합니다.
참, 그동안 오늘의논문에서 다룬 논문, 연구보고서를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어떤 자료를 읽고 재해석해왔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링크에서 내용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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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로 뉴스레터를 보내야겠단 다짐을 하고 꾸준히 잘 지켜왔는데, 펑크를 냈습니다.😥 원래 계획으론 5월 3주에 발송이 돼야 했는데 5월 마지막 주에 부랴부랴 뉴스레터를 보내네요. 혹시 기다리셨던 구독자분께서 계셨다면 늦었지만 죄송하단 말씀을 전합니다. 주기성을 갖고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는데 흐름이 깨졌습니다. 몸과 마음을 잘 정돈해야겠어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24년의 봄도 끝자락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모쪼록 내 안의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함께하는 시간이 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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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논문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뉴스레터에 대한 간단한 의견이나 감상,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이 있으시다면 남겨주세요.
오늘의 논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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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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